“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중소기업”

78년 가업 승계…화장품 사출성형 전통ㆍ경험 ‘가치 축적’

이정아 기자 leeah@cmn.co.kr [기사입력 : 2017-05-30 오후 5: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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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남 이화피앤씨 대표이사

[CMN 이정아 기자] 사람들이 자주 묻는다. ‘아직도 제조업을 하십니까?’라고. 제조업의 고단함을 채 알기도 전인 스물 일곱 앳된 나이에 가업을 승계한 이 대표에게 이 물음은 여전히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킨다. 큰 아들이 회사에 합류해 3세 경영의 틀을 다지고 있어서이기도 하다.


“1970년 창업한 삼양 이화공업사가 이화피앤씨의 전신입니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준비도 안된 상태에서 경영을 맡게 됐는데 그게 78년입니다. 당시만 해도 젊은 사람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아~ 빨리 나이들었으면’ 하는 게 소원이었을 정도였죠. 이중삼중고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습니다.”


사업초기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30대 중반쯤 지나서야 조금씩 뭔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울 답십리에서 시작해 중곡동을 거쳐 지금의 원주시 문막공단으로 옮겨온 건 94년이다.


“그 때는 원주군이었습니다. 직원 중 원주 사람이 있었는데 문막에 공업단지를 조성한다는 얘길 전해들은 게 인연이 되어 이 곳에 자리를 잡았죠. 20여년이 훌쩍 지나면서 이제는 향토기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내최초 거울 진공증착을 시작으로 사출, 조립, 금형, 인쇄, 코팅, 후가공 등 사출성형 전문 기업으로서 오랜 전통과 축적된 경험은 이화피앤씨의 가치를 오늘에 이르게 했다. 보유하고 있는 자체 몰드만도 700~800여벌이나 된다. R&D 활성화 구상도 끊임없는 ‘현재형’이다.

“가장 오래된 거래처는 한국화장품입니다. 72년부터 였습니다. 우습게도 한국화장품에 제가 근무한 걸로 기억하는 이들도 꽤 많습니다. 오휘, 후의 비중이 워낙 크다보니 LG생활건강 역시 주요한 거래처 중 하나입니다.”


이화피앤씨는 럭셔리, 프리미엄 화장품 용기에 강하다. 또 거래처 확대 보다는 기존 고객사 만족에 더욱 중점을 둬왔다. ‘오래 기업을 해왔지만 그에 비례해 규모의 성장은 이루지 못했다’는 이 대표의 ‘겸양’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회사에서 제일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이 사장이어야 합니다. 직원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고자 애쓰는 것도 사장의 몫이구요. 지난 40여년 동안 단 한번도 월급을 늦춘 적 없습니다. 10억 부도를 맞은 IMF 때도 그 약속은 지켜졌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기본을 지키는 것, 그에겐 무엇보다 중요하다. 더불어 이 대표는 ‘자유’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기며 산다. 물론 본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회사도 그렇다. 직원들한테도 자유를 줘야한다는 생각이다.


“방종과 방탕이 아닙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유 안에 구속이 있습니다. 자유도 철저한 자기 관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놔둬라’라는 주의입니다. 이화피앤씨를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중소기업으로 키워 가는 게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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