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장타자이지만 홈런타자는 아니다. 그는 장타자이지만 2루를 넘어선 적이 없다. 걸음이 느려서다. 그는 멀리 쳐 놓고도 2루로 뛰기를 포기한다. 2루에서 잡히는게 두려워서다. 그러던 어느 날의 경기에서는 1루를 넘어 2루로 달리기 시작한다. 지금껏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2루를 향해서. 그것도 잠깐이다. 그는 다시 1루로 되돌아와 엎어지면서 베이스를 움켜쥔다. 1루 코치는 물론 상대편 수비수도 달리라고 할 때, 그제서야 자신이 홈런을 쳤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머니볼’에 나오는 마이너리스 선수의 일화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가난한 구단을 이끌고 20연승이라는 신화를 쓴 빌리 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에게 부단장이 ‘비유’로 보여준 내용이다. 자신이 이뤄온 것을 제대로 보고 자신감을 가지란 의미일 터이다. 빌리 빈 단장은 머니볼 이론을 접목시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를 2000년부터 2003년까지 4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머니볼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성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야구 경제학 이론이다. 발빠르고 홈런을 잘 치는 타자와 공격력과 수비력를 겸비한 선수는 몸값이 비싸 가난한 구단으로서는 영입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타율보다 출루율에, 기동력보다는 장타력에, 수비력보다는 공격력에 초점을 맞춰 선수를 영입해 이기는 게임을 이끄는 이론이다. 실제 이 영화의 원작소설의 부제는 불공정한 게임에서 승리하는 기법(The Art of Winning an Unfair Game)이다.
자본으로 움직이는 시장은 태생적으로 불공정하다. 대기업이 유통파워까지 쥐고 있는 시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틈으로 들어갈 수 없다. 화장품 시장을 봐도 빅 2 기업과 브랜드숍 중심으로 굳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아갈 곳을 찾지 못하는 기업이 많다. 이미 홈런을 쳤어도 2루로 뛰기를 포기하는 선수처럼 넘어서지 못할 벽을 친다. 홈런을 쳐본 선수들은 치는 순간 느낀다고 한다. 홈런을 쳐본 적이 없는 선수들은 치는 순간 전력 질주를 한다. 그러나 거리 가늠을 하지 못하거나 걸음이 느려 안전한 베이스로 돌아가고야 만다.
해가 바뀌었다. 모두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달라지는 것은 같은 방식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시장을 지배하는 세력이 만들어놓은 룰을 뒤집는 방식을 찾지 않으면 틈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건 우리 모두가 이미 홈런을 쳐놓고 달리기를 멈췄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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