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야식사냥꾼의 마케팅 맛보기 04

설렁탕 – 스토리가 있어야 사랑받는다

이정아 기자 leeah@cmn.co.kr [기사입력 : 2015-03-04 19: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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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MN] 국물을 사랑하는 한국사람들이 해장국과 함께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이 설렁탕
, 곰탕이다. 그런데 직접 요리를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를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곰탕은 고기를 장시간 고은 국물이고 설렁탕은 뼈를 고아서 국물을 우려낸 음식이다. 곰탕은 양, 곱창, 양지머리 따위의 국거리를 넣고 고아서 끓인 국이고 설렁탕은 소머리, 내장, 족발, 도가니, 뼈다귀 따위를 넣고 푹 끓인 국이다.

원래 곰탕은 고기, 설렁탕은 뼈다귀가 메인이라고 알고 구분하면 된다. 뼈를 메인으로 하더라도 소의 다리 뼈를 고은 것은 사골국이라 부르는 고급음식이고, 설렁탕은 주로 잡뼈를 고은 것이니 서민적인 음식이다. 곰탕(곰국)은 조선시대 문헌에 자주 등장하며, 보약처럼 귀하게 여겼다. 그 재료들도 비싸고 좋은 것들이다.

반면 설렁탕은 옛날 문헌에선 찾아볼 수 없고 20세기 이후 등장한다. 예전에는 설렁탕이라는 이름이 없었거나, 하층민의 음식이었기 때문에 문헌에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1929년 발행된 별건곤이라는 잡지에는 설렁탕이 하층계급이 주로 먹는 경성의 별미라고 소개해 놓았다.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1924년 발표)’에서 인력거꾼의 아내가 먹기를 소원하는 음식으로 설렁탕이 등장하는 것은, 서민음식인 설렁탕을 못먹을 정도로 가난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이다.

설렁탕집에 가면 벽에 붙어있는 이야기라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설렁탕의 스토리가 있다. 조선시대 때 임금이 직접 밭을 갈며 농사를 장려하고 하늘에 풍년을 기원했던 선농제(先農祭)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제사 때 쓴 쌀로 밥을 짓고 임금이 밭 갈던 소를 잡아 참석자들이 골고루 나눠 먹으며 풍년을 빌었기 때문에 선농탕(先農湯)이라고 했는데, 이 말이 변해 설렁탕이 되었다는 얘기다.

이 얘기는 1940년 홍선표가 쓴 조선요리학이라는 책에 실려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다수 학자들이 이 기원에 대해 이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상식으로 알면 좋겠다. 조선은 농사를 근본으로 하는 농경사회였다. 그런데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는 선농제 행사에서 농사에 필요한 소를 잡아 먹은 것이 설렁탕의 기원이 됐다는 이야기에는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한 일제강점기 때 만해도 설렁탕은 지극히 서민적인 음식이었는데, 임금이 곰탕이 아닌 설렁탕을 먹었다는 것도 납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설렁탕은 백정들의 음식이었을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백정들은 도축해준 대가로 가죽이나 소의 부산물을 받았다. 설렁탕의 주재료인 소머리, 내장, 족발, 도가니, 뼈다귀 등을 백정들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백정 집에서 소고기 부산물로 탕을 끓여 옹기그릇에 담아 팔았는데, 이것이 하층민들 사이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양반들도 그 맛에 반했는데, 하층민들 틈에 끼여서 먹을 수는 없어 집으로 배달시켜서 먹었다고 한다. 1920년에 서울 인근에 25군데 정도였던 설렁탕집이 1924년에 100곳으로 급격하게 늘어났다.

숭유억불 정책을 실시했던 조선시대에는 형편 좋은 양반들 사이에서 소고기 먹는 것이 유행했었는데, 오늘날처럼 충분하게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에 소고기 유행이 농사에 차질을 주게 되었다. 태조는 1398(태조 7)우금령(牛禁令)’을 내려 개인이 소와 말을 도살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리고 세종은 소 밀도살을 감시, 처벌하는 금살도감(禁殺都監)을 설치했고, 도살 현장을 신고한 사람에게 도살범의 재산을 보상금으로 주는 제도를 시행했다. ‘소는 농사에 꼭 필요한 동물이니 잡아먹지 말라며 소 보호정책도 강화했다고 한다. 이랬던 세종이 소를 잡아 백성들과 나눠 먹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다만, 세종 개인은 고기반찬이 없으면 밥을 먹지 못할 정도로 고기를 좋아했다. 세종의 육류 편식 습관은 부친인 태종이 탄식할 정도로 심각했다 한다. 그러니 지배 계층에게는 우금령이 유명무실했을 것이고 때에 따라 힘없는 백성들만 법의 적용을 받아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위대한 임금에게도 입이 머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적인 면모가 있었다고 좋게 생각하자.

하지만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 설렁탕 탄생 스토리는 음식점에서 설렁탕을 시켜먹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있는 국민 상식이 되었다. 음식이란 처음엔 입으로 먹지만, 나중에는 추억으로, 그리고 가슴으로 먹게 되는 법이다.

그 진실 여부를 의심받는 스토리지만 이 스토리는 오늘날 우리가 설렁탕을 맛있게 먹고 추억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스토리가 있으니 기억하게 되고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고객에게 제품과 함께 어떤 스토리를 팔고 있는지 점검해봐야 한다.

최완 빅디테일 대표 david@bigdetai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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