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영 기자 jysim@cmn.co.kr
[기사입력 : 2026-05-04 오전 1:07:13]
유튜브 기후에너지환경부LIVE 채널 화면 갈무리 [CMN 심재영 기자] 오는 8월 12일, 유럽연합(EU)의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 Packaging and Packaging Waste Regulation)’이 본격 시행된다.
EU 시장을 겨냥한 화장품‧뷰티 기업이라면 더 이상 관망할 시간이 없다. 포장재 유해 물질 제한부터 재활용성 등급 의무화, 과대포장 금지까지 3중 규제가 한꺼번에 적용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9일 정부가 개최한 ‘포장재 분야 국외(글로벌) 규제 대응 정부 합동 설명회’는 이러한 긴박감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PPWR(Regualtion 2025/40)은 2025년 2월 발효된 EU의 포괄적 포장 규제로, EU 역내에서 유통되는 모든 포장재에 적용된다. 규제 대상은 제조업자‧수입업자‧판매업자를 모두 포함하며, 화장품 용기와 패키징도 예외가 없다.
핵심 규제는 크게 세 축으로 나뉜다. 첫째는 유해 물질 제한으로, 2026년 8월부터 4대 중금속(납‧카드뮴‧수은‧6가크롬) 합산 100mg/kg 이하 기준과 함께 PFAS(과불화화합물) 제한이 즉시 적용된다. 식품과 접촉하는 포장재의 경우 단일 PFAS는 25ppb 이하, 전체 불소(고분자 포함)는 50ppm 이하로 제한된다.
둘째는 재활용성 기준이다. 2030년부터 재활용 가능 비율 70%(C등급) 이상인 포장재만 EU 시장에 출시할 수 있으며, 2038년에는 기준이 80%(B등급)로 강화된다. 플라스틱 포장재에는 재생 원료 의무 사용 비율도 부과된다.
셋째는 과대포장 규제다. 2030년부터 포장재 내부 빈 공간이 50%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 고급 화장품 브랜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형 박스 속 소용량 제품 구성이 사실상 어렵게 된다는 의미다.
이번 설명회에서 주목할 점은 EU가 화장품 포장재에 대한 별도 특별 규정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EU는 환경총국이 PPWR(Regulation 2025/40)을 통해 ‘모든 포장재’를 총괄 관리하며, 화장품 포장재 자체에 대한 별도 관리 규정은 없다.
이와 달리 국내의 경우,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및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으로 모든 포장재를 규율하고 있으며, 화장품 포장재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
즉, 국내 화장품 기업이 유럽 시장에 진출할 때는 EU의 포괄적 PPWR 기준 외에, 자사 제품이 별도 기준을 충족하는지 이중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용기‧포장의 재질, 재활용성, 유해 물질 함량은 물론, 라벨링 정보 등 모든 항목이 점검 대상이다.
여기서 라벨링 규제도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2028년 8월부터는 포장재의 재료 구성과 분리배출 방법을 표시해야 하며, QR코드를 통한 소비자 정보 제공도 의무화된다. 또, 2029년 2월부터는 재사용 가능 포장재에 대한 추가 라벨과 QR코드 정보 제공이 요구된다.
이번 설명회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화장품 포장재 관련 규제 준수와 함께, 화장품 내용물 자체에 대한 안전 관리 기준도 재차 강조했다. 현행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식약처 고시 제2026-19호) 제6조에 따르면, 포장재로부터 비의도적으로 이행(migration)되는 물질에 대해서도 검출 허용 한도를 준수해야 한다.
이는 포장재가 PPWR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포장재에서 화장품 내용물로 유해 물질이 용출될 경우 국내 법령 위반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무적으로는 포장 소재 선정 단계부터 이행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정부는 이번 설명회를 계기로 국내 수출 기업의 PPWR 대응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은 PPWR EU TF를 중심으로 식품, 화장품, 생활용품, 전자제품 등 품목별로 포장재 최소화, 재활용 설계, 기술문서 작성 등 심화 교육을 10회 실시할 예정이다.
PPWR 심화교육 신청은 중소기업 해외규격인증획득지원센터(www.smes.go.kr/globalcerti/)를 통해 기업 회원 가입 후 신청할 수 있다. 또한, KTR은 기업의 PPWR 대응을 위한 기술문서 작성, 적합성 평가, 시험 분석 등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할 예정이다.
KTR PPWR TF 황범구 팀장은 “PPWR 규정은 일부 조항의 세부 시행규칙이 향후 EU 집행위원회의 위임법령으로 명확화될 예정이므로, 실무 적용 시에는 원문 규정을 반드시 재확인해야 한다”며, “법적 자문을 대체하는 자료가 아닌 만큼 전문가 검토를 병행할 것”을 권고했다.
설명회에서 제시된 내용을 종합하면, 국내 화장품 제조업자 및 책임판매업자가 지금 당장 착수해야 할 대응 과제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포장 소재 전면 점검이다. 현재 사용 중인 용기‧포장재의 유해 물질 함량(중금속 4종, PFAS)을 공인 시험기관을 통해 측정하고, 적합성 선언서(DoC) 및 기술문서(TD) 작성을 준비해야 한다. 2026년 8월부터 적용되기에 가장 시급하다.
둘째는 재활용 설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화장품 업계 특성상 복합 재질 포장이 많아 재활용성 등급이 낮을 가능성이 높다. 2030년 C등급(재활용 가능 70%) 기준을 목표로 단일 재질화, 분리 가능 구조 설계 등 선제적 전환이 필요하다.
셋째는 내용물 포장 이행(migration) 안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EU 진출 시 PPWR 규제 충족과는 별도로, 국내 식약처 고시에서 정한 포장재 이행 물질 허용 한도도 준수해야 한다. 포장 소재 변경 시 반드시 이행 시험을 병행해야 한다.
PPWR은 단순한 환경 규제가 아니다. EU 시장 진입 자체를 좌우하는 사실상의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K뷰티는 핵심 경쟁력인 고급 패키징이 과대포장 규제와 충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선제적이고 전략적인 대응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