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야식사냥꾼의 마케팅 맛보기 02

원래 짜장면은 검지 않았다 – 1등이 표준을 만든다

이정아 기자 leeah@cmn.co.kr [기사입력 : 2015-01-26 15:5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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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 불던
2월 어느 날 국민학교(초등학교 아님) 졸업식을 마치고 부모님을 따라가 먹은 음식은 짜장면이었다. 문학서클 활동을 하던 고등학생 시절에 문학의 밤 행사를 준비할 때 선배들이 찾아와 사준 음식도 짜장면이었다.

그래서 짜장면에는 아련함과 애틋함이 배어있다. 중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시끌벅적 떠들면서 뚝딱 하고 한그릇 해치우던 기억, 마음 외롭던 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막 나온 짜장면을 보며 미소 짓던 그날의 내 얼굴도 생각 난다.
짜장면은 지금은 잘 쓰지 않는 필름 카메라와 같은 감성을 가지고 있다. 당시에 비해 가격도 많이 달라졌고, 특별한 날 먹던 음식에서 그저 한끼 때우는 음식으로 변해버리긴 했지만 적어도 내겐 흑백사진 속 추억들과 지금 이 순간을 순식간에 넘나들게 하는 마법의 음식이다.

어렸을 땐 좋은 일이 있던 날에 먹던 음식이라 가끔 그 추억에 젖는다. 지금 운영하고 있는 회사를 시작하고 첫번째 매출이 발생해 통장에 입금되던 날, 짜장면 곱빼기를 시켜서 작은 승리를 한참 즐겼다. 맘 졸였던 가슴 속 눈물에 대한 보상이었다.

짜장면, 자장면(炸醬麵)은 장()을 볶는다는 뜻이다. 중국식 된장을 기름에 볶아 국수에 얹어서 먹는 음식이다. 따라서 한국과 같은 짜장면은 없지만, 중국엔 이미 다양한 짜장면이 있다. 국적 시비가 벌어질만 하다. 중국 음식인지 한국 음식인지. 비록 원조는 중국이지만 우리나라 땅에서 한국화 됐으니 한국음식으로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짜장면을 한국에 들여온 건 중국 산둥 지방 사람들이었다. 1883년 제물포가 개항되면서 청나라 문물이 조선으로 대거 유입되었는데, 당시에 함께 들어온 것으로 본다. 제물포 항구와 가까운 산둥성(山東省) 출신의 중국인 노무자들이 몰려오면서 중국 된장인 춘장을 야채, 고기와 함께 볶아 국수와 비벼 먹었던 음식이 짜장면(자장면)인 것이다.

자장면(炸醬麵)은 원래 중국 북방의 서민 음식으로 산둥성, 산시성, 동북 3성 등에서도 먹지만 북경 자장면이 유명하다. 지금도 북경 시내에서는 옛날식 북경 자장면(老北京 炸醬麵)’이라는 간판을 단 국수집을 흔히 볼 수 있다 한다.

자장면이 맞는 말인지 짜장면이 맞는 말인지 하는 오랜 논란은 20118월에 짜장면이 국립국어원으로부터 표준어로 인정을 받게 되면서 없어졌다. 자장면도 맞고, 짜장면도 맞다. 짜장면에 대한 추억을 얘기할 때 어색하게 자장면이라 발음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짜장면은 원래 검지 않았다. 오늘날 짜장면이 검은 색깔인 데에는 마케팅 케이스 하나가 숨어있다. 우리나라의 된장처럼 콩을 발효시킨 춘장의 색깔이 검을 이유는 없다. 원래 춘장은 갈색이었다. 그런데 후발업체가 시장에 진입하면서 캐러멜을 첨가해서 색을 짙게 만들곤 검은 색에 가까울수록 오래 묵은 질 좋은 춘장인 것처럼 입소문을 내기 시작해 검은색 춘장이 많아지게 됐고 결국은 기존 일등 업체마저 검은색 춘장을 만들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오늘날 이 캐러멜 색소는 콜라, 빵 등의 색을 낼 때도 사용되며 몸에 좋지 않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수십년 전에는 검은 짜장면이 좋은 짜장면인 것처럼 마케팅 했었다 하니 소비자의 눈높이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짜장면의 원래 색깔이 검은지 갈색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후발업체의 강력한 마케팅에 의해 짜장면이 검어진 것도 이 음식에 관한 스토리요 역사다. 결국 역사는 승자가 쓰게 되는 법이다. 1등이 된 업체가 표준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마케터는 그 이야기 속에서 인사이트를 발견하고 기억하면 된다. 짜장면을 먹을 때마다 검은 색깔을 찝찝해할 필요도 없다.

<야식사냥꾼의 Tip>
사춘기에 접어든 자녀가 있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집에서 짜장면을 직접 만들어 보시라. 자녀와의 사이에 점차 대화가 줄어들고 서먹한 관계가 시작되었다면, 함께 뭔가를 만들어 먹는 경험은 오랫동안 자녀의 머리 속에 남을 것이다. 줄어가던 대화가 잠시 풍성해지는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자신을 위해 이런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녀도 느낀다. , 딱 두번까지만 하는 것이 좋다. 그 다음부턴 맛에 대한 평가를 하게 되고 결국 맛이 없다며 시큰둥해지게 된다. 직접 만들어보면 알게 되는 것이지만, 설탕과 MSG를 듬뿍 넣지 않고 맛있는 짜장면을 만드는 것은 아마추어 요리사에겐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최완 빅디테일 대표 david@bigdetai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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