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아티스트 오민, 미용계의 이단아
글로벌 아트 디렉터로 우뚝 서다

오민코삽스의 오민 원장은 20여년간 국내외 수많은 패션쇼에서 헤어와 메이크업 연출을 담당해 온 패션계의 주요 인물이다. 미용인이면서도 패션인을 넘나드는 그는 서울패션위크 및 국내외 주요 패션쇼 백스테이지에서 모델들의 헤어와 메이크업을 책임지고 무려 4000회가 넘는 패션쇼에서 헤어, 메이크업을 연출해 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헤어디자이너로 국내 최고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와 모델들은 너나할 것 없이 오민코삽스 팀의 손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이 없을 정도다. 최근 들어서는 각종 글로벌 행사의 총괄디렉터로서 헤어 아티스트로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나가고 있는 그를 만나, 숨은 이야기와 성공의 비결에 대해서 들어 본다.

수많은 패션쇼는 그에게 미용인으로서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고 그는 ‘패션’을 이해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는 ‘의상과 헤어, 메이크업의 조화로 얼마나 멋진 무대가 완성될 수 있는가’를 무대 위에서 보여줬고 어느 날부터 패션디자이너가 먼저 찾는 헤어디자이너가 되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한류 열기에 기술력과, 비주얼적인 요소들을 고루 담아 전통과 현대를 결합시킨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면서 그에게 다시 새로운 도전의 길이 열리고 있다. 총괄 디렉터 작업과 아트 작업이 속속 성공하면서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헤어 아트 디렉터로 우뚝 선 디자이너 오민. 그의 성공을 향한 피나는 노력이 그만큼의 반응으로 돌아왔다.
자긍심과 프로정신으로 개척한 ‘콜라보레이션 아트작업’ 속속 성공
맨몸으로 뛰어든 패션계서 한국적 헤어 아트의 새로운 장르 열어
2002년 월드컵 전야제에 모델 100여명의 헤어와 메이크업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헤어 디자이너 오민의 작품이었다. 10년 뒤인 2011 아시아 패션어워드에서 헤어스타일리스트 부문 대상을 비롯해,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 축하쇼 이상봉 디자이너의 ‘오색단청쇼’ 헤어 메이크업을 총괄하면서 헤어아트 부문에서도 한국적인 디자인을 재해석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그는 ‘오색단청’이라는 주제를 한국적이면서 아방가르드하게 표현해 현지인들의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이후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 측에서 그의 작품 기와 한 점이 이상봉 디자이너의 의상과 함께 영구 기증되는 영광을 얻었다.
2013년 서울 국제 모터쇼에서 쌍용자동차관의 전시회 아트디렉터를 맡으면서 그의 작품 세계는 절정을 맞고 있다.
기존 레이싱걸 위주가 아닌 패션과 패션모델이 함께 하는 공연을 구성하여 주목을 모은 그는, 10월 청주비엔날레에서 디자이너 이상봉씨와 함께 마네킹에 훈민정음 고서를 청계천 헌책방에서 찾아 내 머리에 얹었고, ‘창’이라는 주제에 맞게 ‘빛’을 고안, 렌즈를 두상 형태로 제작해 새로운 아트세계를 보여 주었다.

운명같이 만난 헤어디자이너의 길
자신을 ‘심심 산골의 시골 출신’으로 소개하는 오민 원장. 그는 가끔 사춘기 시절 음악에 심취해 친구들과 그룹을 결성해 아마추어로 음악활동까지 했지만, 추위와 배고픔에 못이겨서 그룹 멤버 모두가 흩어져 버렸던 뼈아픈 경험을 떠올리곤 한다.
각자 아르바이트를 해서 자그마한 연습실이라도 마련해 다시 뭉치기로 결의한 후 그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미용’이었다고 한다. 물론, 작은 누나의 권유가 있긴 했지만 1984년 당시 남자가 미용을 하는 것은 상상이상의 용기가 필요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그는 어느 날 무작정 뛰어나와 길을 걷다가 옛날 정동 MBC 방송국 옆에 있는 문화체육관에서 개최되는 중앙 디자이너 그룹의 패션쇼를 보게 되었다. 그날, 그의 ‘헤어디자이너’로서의 새로운 길은 그렇게 열렸다. 오랜 문전박대와 수모를 견디면서 마침내 기회는 찾아왔고, 그렇게 패션쇼 백스테이지 현장은
그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원칙’과 ‘신뢰’로 보답받은 인맥
“저의 이름이 알려지면서 여러 미용단체에서 제게 합류할 것을 원했어요. 하지만 저는 어떤 단체에도 가입하지 않았어요. 단순히 그들과 합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민은 건방진 놈, 정신병자, 또라이, 미용계의 이단아’라고 불리게 됐죠” 그는 자신을 그렇게 부르는 것에 대해서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지만, 자신의 인생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원칙’과 ‘신뢰’ 였음을 강조한다.
미용단체에 가입하는 것보다 모델들이 패션쇼에서 좀 더 아름답게 보이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했고 ‘돈을 버는 것보다 먼저 한 약속이 중요하다’는 신념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어느 날, 모 중소기업의 패션쇼의 의뢰가 들어왔다. 그러자, 같은 날 비슷한 시간대에 모 대기업에서 갑자기 패션쇼의 스타일링을 맡아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중소기업 패션쇼의 무려 10배가 넘는 크고 버라이어티한 대기업의 쇼였지만, 선약을 중시한 그는 단박에 그 제의를 거절했다. 아니,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의 결정을 두고 대기업 관계자들은 ‘또라이’,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라고 욕설을 퍼부었지만 중소기업 패션쇼의 담당자와 대표는 그가 약속을 지켜준 것에 대해 눈물까지 흘리며 고마워했다고 한다.
그 일이 알려지면서 오민 원장은 충무로 바닥에서 괴물, 희한한 인간, 돈보다도 행사 예약이 우선인 사람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6개월에서 10개월 후에 계획된 쇼를 예약해야 할 정도로 문의전화가 쇄도했고 1년에 316개의 쇼를 해야 할 정도로 바빠지기 시작했으니 이쯤되면 그의 원칙과 신뢰를 우선으로 한 생활 철학이 그에게 확실하게 보답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프로다! 프로답게 일하자!”
오늘날의 그를 성공에 이르게 한 것중의 하나가 투철한 동료 의식과 프로의식. 수많은 행사들을 하기 위해 그와 그의 동료들은 미용실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마치 가발제조공장처럼 일했다. 빵과 음료수등의 야식과 함께 졸음을 쫓으며 헤어 소품들을 만들어야 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우리는 프로다. 프로답게 일하자”는 생각을 잃지 않았다.
“남과 같은 생각을 하지 말고, 남과 같은 두려움을 갖지 말고, 남보다 먼저 모험해보고 아픔을 느끼자”고 수없이 외치며 검은 헤어용품 트렁크를 끌고 지하철로 달려가곤 했다. 남다른 동료의식과 프로정신이 오늘날 그를 있게 한 원동력이 된 셈이다.
그는 “요즘 미용인들 스스로 자신의 입지를 땅에 떨어뜨리고 있어 가슴이 아프다”고 말한다. 국내 최고라고 하는 매머드 미용실, 100여개의 프랜차이즈를 가진 기업형 미용실 등 최고의 미용실들이 ‘협찬’이라는 명분 아래 무료로 패션쇼에 임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한다는 것이다. 미용인 스스로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는 것. 그래서 그는 어린 제자들이 자신보다 더 많은 개런티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는 업계에서 유명할 정도로 사이가 돈독한 이상봉 쇼에서 가장 많은 개런티를 받지만 아이러니컬 하게도 디자이너 이상봉씨는 항상 그에게 이렇게 말해준다고 한다. “나는 오 선생이 있어서 너무 행복해. 당신이 다 알아서 해주니까”
크고 담대해 지기 위한 또 다른 노력
그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어느 누구보다도 많다. 지금까지 80여개국을 다녔고 여권에 더 이상 입국 비자 도장을 찍을 곳이 없을 정도여서 해외 출장 때마다 여권을 두 개씩 갖고 다닐 정도다. 그는 광고, 화보, 패션 카달로그, 패션쇼 등 수많은 행사와 업무로 많은 나라를 여행했고 모든 행사에 오민코삽스 스텝들과 함께 했다. 때로는 한명의 스텝을 더 데려가기 위해 비행기 비즈니스 좌석을 반납하고 이코노미 좌석으로 바꾸기도 했다.
스텝 한 명을 더 데려가면 그가 다음 세상의 정치, 문화, 경제를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게 되어 그가 더 크고 담대하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은 상당한 수준임을 대외적으로 인정받게 되고 그에 알맞은 높은 개런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게 된다는 것을 믿는다.
“정당한 개런티도 받지 못하면서 연예인들 무료 협찬했다고 자랑하는 일이 있어선 안됩니다. 이제 저는 팀 코삽스라는 새로운 동료를 탄생시키려고 합니다. 제가 개척해 놓은 이 마당에서 함께 배우고 함께 일하고 함께 고민하며 함께 행복을 느끼자는 것입니다. 저는 팀 코삽스가 저보다 더 많은 개런티를 받는, 당당한 미용인으로 육성할 것입니다.”
오랜 좌절과 시련을 딛고 일어서 명실공히 대한민국 최고의 헤어 아티스트 자리에 오른 그의 얼굴에서 당당함이 묻어나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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